발소리 신변잡기

 K씨가 군생활을 한 부대는 도심에 위치한 것 치고는 귀신 나올 것 같은 장소가 꽤 있었다.
 예를 들면 K씨 소속 중대가 근무하는 처부 뒤편에는 초소가 하나 있었는데, 꽤 오래 전에 총기난사 사건이 있은 뒤로 초소를 허물고 나서 제초작업 할 때 말고는 아무도 가지 않는 장소가 되었다.
 또, 목 매다는 사람 그림자를 봤다는 소문이 도는 낡은 창고가 둘 있었는데 하나는 옛 PX 창고로 쓰던 건물이고 하나는 생활관 뒤편에 있는, 관리도 전혀 하지 않아 무너져 가는 작은 창고였다. K씨는 2년간의 군 생활 동안 이 창고 문이 열리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K씨가 복무하던 수송대는 본부중대, 지원중대와 함께 탄약고 경계근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가는 길 중 하나에 무덤이 2기 있어서 꺼림직하게 여기는 병사들도 제법 있었다. 듣기로는 별 사연은 없는 지역 주민의 조상 묘인데, 부대 부지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매입에 실패해서 그 무덤 주변만 사유지로 남아있는 것이었다. 명절 등에 와서 성묘를 한다고는 하는데, K씨는 역시 2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 했다. 간 큰 선임병 하나가 거기 짱박혀서 낮잠을 자다가 가위 눌렸다는 얘기도 있었다.
 탄약고 경계 근무 자체는 K씨가 자대 배치 받을 무렵에야 2인 1조로 탄약고 위쪽 초소에 서서 탄약고를 내려다 보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바뀌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3인 1조로 보통 가장 선임병이 초소에 위치하고, 후임병 둘이 탄약고와 그 옆에 있는 부식창고 철조망 주변을 빙빙 도는 형태였다. 선임병이 "마음씨 좋은" 사람이면 적당히 철조망 순찰을 면제해 주거나 교대를 해 주었고, 좀 군기를 잡아야겠다거나 "악마" 스타일이라면 근무시간 내내 교대도 없이 철조망 주변을 빙빙 돌아야 했다.
 S 상병은 후자였고, 그날도 추운 겨울 밤에 후임 두 명을 "돌리고" 있었다.
 탄약고와 부식창고 철조망 주변은 풀이 자라고 낙엽이 쌓인 땅이라 후임 두 명의 발소리는 부스럭대는 부드러운 소리였다. 수면시간이 항상 부족한지라 S상병은 휴가 때 몰래 가지고 온 MP3 플레이어의 이어폰을 귀에 꽂은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음악소리 너머로 누군가 탄약고에서 초소로 이어지는 시멘트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렸다. 계속 철조망을 돌라고 시켰는데 후임 찌끄레기가 겁도 없이 올라오나 싶어서 S상병은 눈을 슬쩍 뜨고 계단을 확인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후임병들은 자신이 시킨 대로 계속 철조망 주변을 돌고 있었다.
 낙엽과 풀을 밟는 소리만 부스럭대고 있었다.
 이상하게 여겨 후임병을 불러 계단으로 올라왔냐고 다그쳤지만 아니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씨발아 뒤질라고 내가 분명히 계단으로 올라오는 소리 들었는데."
 "진짜 저희 아닙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으스스한 일이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S 상병이 무서웠던 것인지 약간 겁먹은 표정의 후임병을 다시 돌려보내고 S 상병은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또 시멘트 계단을 밟는 소리가 저벅저벅 들려왔다. 후임병들의 발소리와는 명백하게 달랐고, 분명 초소 쪽으로 천천히 올라오는 소리였다.
 하지만 역시 눈을 뜨고 확인하면 아무도 없다. 
 당직사관이나 사령이 몰래 순찰을 왔나 싶기도 했지만 주위를 면밀히 살펴 보아도 철조망을 도는 후임병 두 명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살짝 불안해진 S상병은 MP3 플레이어를 끄고 자세를 바로 해서 근무시간이 끝날때까지 눈을 뜨고 있기로 했다. 그러나 졸음기가 아직 가시질 않아서인지 오래지 않아 눈이 슬슬 감겨왔다. 졸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눈을 감고 마는 것이 생리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비몽사몽간에 또 시멘트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벅, 저벅, 천천히 들리던 발소리가 점점 빨라진다. 마치 S상병을 향해 뛰어오고 있기라도 한 양 급하게 계단을 뛰어오르는 소리로 바뀌고 있었다.

 탁탁탁탁탁.

 바로 앞으로 누군가 달려드는 소리에 기겁해서 눈을 번쩍 뜨자마자 발소리는 뚝 그쳤고 S 상병 앞에는 하니 아무도 없었다.
 후임병들이 풀 밟는 소리만 버스럭 버스럭 울리고 있었다.
 K씨는 나중에 S 상병과 탄약고 근무를 나가서 이 이야기를 듣고서 탄약고 앞쪽 아파트 단지에서 행인이 아스팔트 위를 걷는 소리가 초소 앞 바위에 반사된 것일 거라고 얘기했지만 "아니라고 병신아." 소리만 들었다.

빈집털이 몽상

 사람들이 대부분 어딘가로 떠나버린 황량한 주택 단지에서 나는 빈 집을 뒤져 물자를 보충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번에 들어간 집은 물건이 엄청나게 많아서 속으로 대박을 외치며 물건을 챙기는데, 틀어져 있는 TV에서는 뉴스가 계속 나오고 있고 여기저기 어질러진 방 안은 명백하게 생활감이 있어서 사실 "빈 집"은 아니었으리라.

 돌연 초인종이 울려서 주인이 돌아온 줄 알고 잔뜩 긴장한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쬐끄만 꼬맹이로, 이 집은 일종의 "가게"인 모양이었는지 꼬맹이는 나에게 집 안에 있던 사탕인지 껌인지의 가격을 묻더니 돌아간다.

 물건도 챙겼고 어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무심코 뉴스가 나오고 있던 TV를 끄는데, 분명 TV는 꺼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서 계속 뉴스 소리가 들려온다. 당황한 나는 소리의 출처를 찾아보지만 발견되지 않고 소리는 계속 들려온다.

그리고 꿈에서 깨니 아버지가 TV로 뉴스를 보고 계셨다.

꿈에서 배트맨 됨 몽상

 꾼 지는 좀 되었는데 꿈 기록 업데이트 겸 해서.

 꿈에서 배트맨이되어서 배트맨스러운 음침한 독백(내용은 기억 안남)을 하고 있는데 로빈한테서 구조요청이 들어왔다. 구하러 가는 길에 잠이 반쯤 깨서 이게 꿈이라는 걸 자각하고 그때부터 갈등이 시작됨. 여기서 깨면 로빈을 못 구하게 된다. 그러면 죽이는 거나 다름 없는데 아무리 꿈이라지만 배트맨이 로빈을 버려도 되는 건가? 여기서 잠을 깨지 말고 계속 자서 로빈을 구한 다음에 일어나면 상쾌하게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더 자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잠은 깨 버리고 로빈은 구하지 못했다. 로빈을 레드후드가 되게 하고 말았어 엉엉엉 하는 애통한 기분만이 남았다.

 배트맨이 되었는데 왜 로빈을 구하지 못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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